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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성했던 유천

작성자
쥔장
작성일
2020.12.21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362
내용

 

 유천 유호는 나의 외갓집 동네이다.

내 어릴적 추억이 스며있는 곳이기도 하다.

외갓집은 사과 과수원을 했기에 외가에 가는 날이면 도라지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엄마와 내가 외갓집에 가는 날이면 나는 신문물을 경험하는 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넓은 신작로가 나를 준욱들게 하기도 했는데....

외숙모가 광에서 국광 사과를 꺼내 오면 그 맛은 상상속의 선악과를 먹는 듯했고

외삼촌께서 나에게 오색의 동글동글한 과자를 내어 주시면 그 기쁨을 주체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외동딸로 자라 그 옛날 교육을 받으셨기에 자식들과도 의사소통이 쉽게 되기도 했다.

엄마는 유천에서 산골로 시집을 오셔서 우리집을 교육자 집안으로 만드셨다.

지금도 청도를 비롯 전국적으로 삼촌의 제자들이 기성세대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서울 지인 모임에서 만난분이 알고 보니 삼촌의 제자였다는 것!

정말 그런 만남을 통해 알게되니 놀라웠다.

교육자이셨던 삼촌과 막내 오빠를 비롯 외갓집 병환오빠도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니....

병환오빠를 박사로 배출 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성공한 형제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나의 사위와 외사촌 오빠는 대학동문이기도 하다.

나의 친정 부모님들은 그 옛날에 교육열이 대단하셨다.

우린 부모님의 가치관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다.

유년시절에는 늘 남들에게 인정과 대우를 받았던 기억만 선명하니 말이다.

상처는 없고 행복했던 추억만 가득한 유년시절은 내 삶의 자산이기도 하다.

유천 유호는 내 모태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외사촌 큰오빠가 유천을 지키고 있으니 외갓집이 존재하고 있긴 하지만

외삼촌이 계셨던 그 흔적이 희미해져 아득한 그리움이 밀려온다.

유호에 3층 건물을 외사촌 오빠가 소유하고 계신것만 봐도 왠지 모르게 든든하다.

내 의식은 유천이란 글자만 인식해도 풍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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