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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엄마의 꽃버선(2015년 한국수필 신인대상 )

작성자
편백하우스
작성일
2019.01.29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95
내용



 나는 엄마가 꽃버선을 신은 모습을 처음 보았다. 놀라움과 낯설음이 교차한다. 쭉 뻗은 다리를 자랑이라도 하듯 반듯하게 누워 계신 엄마의 모습이 한 줄기 새벽 달빛에 씻긴 듯 단아하고 정갈하다. 수의를 입고 꽃무늬 버선을 신으신 모습은 마치 갓 시집 온 새색시 같다.

유기불안증인가몇 초이라도  붙들고 싶었다당신의 치맛자락이라도 잡고 애원하고 싶었다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몰아쉬던 숨이 멎고 말았다내 안의 태양이 멈추는 순간이다. 영원에서 자유로울 것 같았던 엄마! 막내딸에게 작별 인사도 없이 매정하게 떠나고 말았다. 창백은 사방으로 파고들고 주체 할 수 없는 배신감이 엄습한다.

엄마는 내가 돌이 지나고부터 십 년 가까운 세월을 결핵관절염으로 청도 송의원에서 사투를 벌이셨다주기적인 결핵균의 활동으로 인해 몇 년에 한 번 씩 나무에 못을   대수술을 감당하셔야 했다. 엄마는 결핵관절염 후유증으로 인해 한쪽 다리에 장애를 앓으셨다. 오른쪽 무릎에 쇠를 박아 놓으셨기에 앉으실  마다 다리를 뻗쳐야 했다. 사람들이 모여 좌정하는 자리에서도 혼자 다리를 뻗쳐야 하셨으니 그 모양새는 그리 단정하지 못했다. 양말도 혼자서는 신을  없었다. 엄마가 외출 하실 때면 오른쪽 발에 양말 신기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내 유년시절에는 엄마의 다리 장애가 나의 원죄인 냥 어린 가슴에 파란 주홍글씨가 되어 매달려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 미희와 언쟁이 벌어졌다불리해진 미희는 찬스를 기다렸다는 나만의 비밀 문을 활짝 열어 버렸다. "너희 엄마 다리에 쇠를 박아 놓았다며?" 엄마의 다리에 쇠를 박아 고정시킨 것이 약점이 되어 더 이상 언쟁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만 눈앞이 캄캄하고 현기증이 날려고 했다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가슴 저 밑에 감춰진 큰 흉터를 들키는 심정이랄까? 발가벗겨진 영혼 앞에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왜 해필 엄마는 다리를 절름거리실까? 엄마의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그리 내키지 않은 적도 있다. 중학교 운동회 때의 일이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 고운 양산까지 받쳐 들고 사뿐사뿐 걸어가시던 연주엄마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엄마도 저렇게 고운 맵시를 지닐 수는 없을까……. 엄마는 자세가 바르지 못해 한복의 복식을 제대로 연출 할 수 없었다. 움직임이 부자유스러운 오른쪽 다리로 인해 발목 위까지 달랑 올라간 한복을 입으셔야 했다.


이른 아침 밭일을 나가셨다가 삐이익 뚜벅, ’삐이익 뚜벅발자국 소리를 내시며 들어오시면 늦은 아침이 깨어난다농촌에서는 몸의 움직임이 경제활동으로 이어지기에 무릎을 구부리지 못하는 엄마는 영아들이 배밀이를 하 듯 밭에 엎드려 김을 매셨다. 온몸에는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되면서도 엄마의 육신은 칠남매의 모성애에 저당 잡혀야 했다. 다리에 결핵균이 침입하기 이전에도 막내삼촌을 대학까지 시키기 위해 산과 들로 다니며 고된 발품을 팔아야 했다. 끼니 해결도 어려웠던 해방 전후, 나의 부모님께서는 청도 한재 대학생 1호를 탄생시켰다. 대청마루에 걸린 삼촌의 사각모는 신분증명서임과 동시에 동네사람들이 놀러 오시면 부모님을 향한 상찬(賞讚)의 도구가 된다. 그 옛날 청도군에서 친정집을 한재 대학생집으로 불렸던 수식어는 당신 뼈의 진액까지 빼내야 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 않았을까?

병이 재발함으로 인해 반복되는 입퇴원이 엄마에겐 일상적인 삶이었다. 어느 날 나에게 새끼줄을 가져 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셨다고 한다. 난 영문도 모른 채 새끼줄을 가져갔지만 방에 누워 계시는 엄마에게 손이 닿지 않아 방문 앞에 두고 놀러 나가 버렸다고 하는데……. 그날 엄마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형편이었다면 한 맺힌 만가(輓歌)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토록 불편했던 다리는 죽음 앞에서야 똑바로 펼 수 있었다. 관에 들어가기 위해 엄마의 굽은 다리를 망치로 바르게 폈던 것이다. 엄마의 다리가 펴진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엄마의 고운 자태에 그만 매료 되고 말았다. 사과향기가 풍길 듯한 고운 맵시는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연주엄마 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문득 엄마와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40여 년 전으로 여행가고 싶어진다. 엄마는 나에게 높은 자존감을 마지막 선물로 주신 것 같다.


곱게 단장한 엄마는 오색상여를 타고 두둥실 허공에 올리어졌다상여 뒤로는 당신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피워낸 꽃불들이 저승 가는 길을 훤히 밝히고 있다. 생전에 신명이 많으셨던 당신은 만가(輓歌)라도 지나 칠 수 없었을 것이다~~~호 애호남차애호, 맵시고운 일국댁이 저승여행 떠나시네 애애애호‘ ’에호남차애호‘, 한 많았던 이승일들 훨훨 날려 버리소서, ~~~호 애호남차애호, 저승길이 멀고멀어 이제가면 언제 오나, ’애애애호 애호남차애호‘, 엄마는 북을 치고 흥을 돋우는 상여꾼들과 함께 신명나게 만가(輓歌)를 부르셨을 것이다. 당신에겐 이승으로 시집을 오실 때 보다 꽃가마를 타고 저승으로 여행 가시는 날이 더 흥겨운 잔칫날이 되지 않았을까?

점점 이승과 저승의 경계선이 선명해진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이 안개처럼 눈앞을 드리운다.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했던가? 내 안에 태양이 멈춰진 것이 아니라 차가워진 영혼의 방을 데워주기 위해 아침마다 찬란히 떠오를 것이다. 내 아픔의 별은 그냥 별똥별이 되지 않았다. 내면의 우주에 떨어져 내 삶을 숙성 시키는 효모가 되어 주었다. 겸손과 배려를 키울 수 있는 토양이 되어 주었으니 말이다. 쌉싸름한 밤꽃이 피는 유월이면 당말리 밤밭에서 늴리리아를 부르시는 어머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을까? 중중머리 장단으로덩실덩실 춤이라도 한바탕 추옵소서! 파란 가을하늘문 사이로 맵시 고운 어머님이 보이는 듯하다.


2015년 한국수필신인대상 김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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