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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0여 년 전 청도의 그림

작성자
쥔장
작성일
2020.11.25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37
내용
 청도라는 지역명사를 떠올리면 송의원과 신라 주유소 그리고  경찰서장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송의원은 엄마가 7년동안 입원해 계셨던 병원이기도 하며 생명의 줄을 연장시킨 공간이기도 하다.
신라 주유소는 둘째 오빠 친구 부모님의 사업장이기도 했다.
아직 내 의식 속에는 신라 주유소가 뇌리에 똬리를 틀며 앉아 있다.
신라 주유소 아들이었던 준곤이 오빠는 친정집을 자신의  집처럼 드나 들기도 했다.
오빠와 준곤이 오빠는 모계고등학교 동기생이었다.
그 당시 모계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우리집에 많이도 놀러 왔던 기억이 난다.
얼굴에 여드름이 송글송글 맺혀 있던 남자 고등학생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천하장사를 능가할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듯했다.
친정집을 그토록 드나 들었던 것은 미인이었던 친정 언니에게 연정을 품었던 탓이기도 했으리라.
둘째 오빠와 청도에 함께 자취했던 막내 오빠는 모범생으로 그 당시 청도 읍장이 사위 삼으려고 했다는 후문도 있었고....
청도 중학교를 졸업한 막내 오빠는 고등학교를 부산으로 가면서 대학도 부산대학교로 진학했다.
결국 막내 오빠는 모그룹 부회장 사위로 인생의 항로가 바뀌었다.
물론 둘째 오빠도 서울 메트로 공기업에서 간부로 정년퇴직을 했으니 청도에서 성공한 케이스이기도 한다.
40여 년이 훨씬 지난 후 만난 준곤이 오빠는 지금 경기도에서 자리고 잡고 있었다.
현재 군수님과 둘째 오빠는 나이는 동갑이지만 한해 후배라고......

마지막으로 청도경찰서장이다.
난 유년시절과 청소년기의 기억저장고 문을 열면 추억 열매가 맛있고 탐스럽게 열려 있다.
종종 청도경찰서장 찝차가 우리집 골목에 주차를 해 놓으면 온 동네 장정들이 양복을 입고 예의를 갖추어
줄을 서서 기다리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 분들은 거의 내 친구 아버지들이셨다.
어린 나는 그 때 부터 권력과 사람과의 관계가 내면에 인지되기 시작했다.
권력은 사람의 간격이 생기게 하는 요인이 되는 것 같았다.
우리 친적이자 삼촌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신 영덕이 아재는 일찍 돌아 가신 삼촌을 대신해서 친정집을 극진히 돌봐 주셨다.
거의 삼촌 역할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빠들이 공무원 시험 쳤을 때 신원조회부터..... 하천 옆에 있는 논에 둑을 쌓는 것 또한 군청에서 많은 지원을 받게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의 지원으로는 엄청 났던 사업이었다.
영덕이 아재는 나의 친정 삼촌과 법대를 다니셨는데 삼촌은 대학졸업을 하시고 영덕이 아재는 중퇴를 했다고....
그 후 경찰에 입문해 야간으로 동아대를 나와서 경찰서장까지 되신 분이시다.
엄마는 농작물을 버스에 싣고 청도장에 가는 날이면 조금은 들뜬 기분이 되신다.
혹여나 부피가 크다는 이유로 버스에 실어주지 않으면 직통으로 청도경찰서에 전화를 하신다.
한재에서 나오는 버스 기사를 빨리 잡아 가둬라고......
순경들이 잡아 갔다는 소리를 들어야 분이 조금은 풀리신다.
엄마는 청도 장날에 오시면 경찰서장실에 내 집처럼 드나 드셨는데...
요즘과 달리 그 옛날 권력은 우매한 국민들에게는 엄청났었던 존재였다.
난 그 시절에 늘 어깨가 우쭐했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집을 가리켜 부잣집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었고
자식들이 똑똑한 집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수식어가 남발 했었다.
나의 성장과정은 주위 환경으로 인해 우월주의로 만들었다.
내가 30살 이전까지는 남을 배려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우주의 포커스가 나로 인해 돌아가는 줄 알았다.
30살 메니옐씨라는 병으로 몇 십 년 연단을 당하고 나니 거듭난 삶으로 변했다.
친구들은 내가 교만하다고 나를 왕따 시켰다고 하는데, 정작 난 그런 것이 겁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난 늘 당당했고 친구의 필요성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나를 향한 친구들의 마음이 변했다.
나의 본심과 진심을 안 친구들은 내가 정말 괜찮은 친구라며 모두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주니 말이다.
나를 오해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솔직히 고백하기도 하고.....
내가 작가가 되고부터 말순이와 미희는 더 친하게 되었으니...
요즘은 동기회에 못 가겠다면 왕복 차까지 섭외해 주고 있으니.....

이제 청도 읍내를 걸으면 신라주유소도 찾을 수 없고
송의원도 문을 닫았고,
김영덕 경찰서장 아재께서도 부산에서 경찰서장으로 정년을 하시고 노년을 보내고 계시니
활기찼던 내 유년의 청도 기억은 아련해지고 있다.
영덕이 아재가 경찰서장으로 계실 때 청도 읍내가 내 집처럼 따뜻했다.
이제 청도의 그림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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